그림이야기

마네와 드가 – 도시의 단면을 그리다

메리지안 2025. 7. 1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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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속 인간, 그 일상의 순간을 예술로 담다

 

19세기 후반,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이 유럽을 뒤덮고 있던 파리. 이 시대의 미술은 더 이상 신화나 종교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의 일상과 도시의 삶을 직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두 명의 천재 화가가 있었습니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와 에드가 드가(Edgar Degas).
그들은 동시대 파리를 살아가면서, 같은 도시의 풍경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그려냈습니다. 마네가 순간의 인상과 빛을 포착했다면, 드가는 도시인의 심리와 구조적 리듬에 집중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마네와 드가가 그린 ‘도시의 단면’을 비교하며, 그들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살펴보겠습니다.

 

 


 

 

1. 도시의 새로운 주인공 – 보통 사람들

마네와 드가는 귀족이나 영웅이 아닌, 도시의 평범한 인물들을 그려냄으로써 당시 미술계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마네의 대표작인 「풀밭 위의 점심」(Le Déjeuner sur l’herbe, 1863)는 고전 회화의 구성을 차용하면서도, 나체 여인을 현실 속 인물처럼 그려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는 단지 누드의 문제를 넘어서, 현대 도시인의 존재를 미술의 중심으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드가 또한 무용수, 다림질하는 여인, 마차에 탄 사람들 등, 도시 생활에 파묻힌 인간의 모습을 냉철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묘사했습니다. 특히 「오페라의 관람석」(L’orchestre de l’Opéra)에서는 음악가와 관객 사이의 긴장과 무대의 역동성을 함께 담아내며, 도시 속 문화공간의 복합적인 층위를 표현했습니다.

 

 

 

2. 마네 – 빛과 순간, 도시의 표면을 그리다

마네 <풀밭위의 점심>

 

마네는 도시를 시각적 자극과 감각의 공간으로 포착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순간적인 장면, 찰나의 인상을 담아내는 데 탁월하며, 도시의 외적 아름다움과 현란한 표면을 묘사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 대표작인 「폴리 베르제르의 바」(A Bar at the Folies-Bergère, 1882)는 마네의 도시 묘사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바의 여종업원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고, 뒤에는 거울에 비친 남성과 무도회장의 모습이 보입니다. 현실과 반영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현대 도시의 소외감과 익명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마네는 인상주의와 밀접한 연관이 있지만, 그는 늘 ‘현대적 삶’을 화폭에 담고자 한 근대 도시 화가였습니다. 거리의 소음, 카페의 활기, 무심한 눈빛들 속에서 마네는 도시의 표면 아래 감춰진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냈습니다.

 

 

 

3. 드가 – 구조와 심리, 도시의 내부를 읽다

드가 <다림질하는 여인들>

 

 

반면 드가는 도시를 분석하고 해체하는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는 마네처럼 순간의 빛보다는, 형태와 구도, 인간의 심리적 거리감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대표작 「다림질하는 여인들」(Women Ironing, 1884–1886)에서 드가는 노동에 지친 여성들의 무표정한 얼굴과 기계적 움직임을 묘사하며, 근대 도시의 피로와 반복성을 말없이 그려냅니다. 그 안에는 도시 노동자의 삶에 대한 연민과 냉정한 현실 인식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드가는 또한 무용수를 자주 그렸는데, 단순한 우아함을 넘어서 리허설, 대기실, 연습 장면 등을 통해 예술 뒤편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도시의 빛나는 무대 뒤에는 고통과 경쟁, 외로움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가는 누구보다 날카롭게 포착했습니다.

 

 

 

4. 같은 도시, 다른 시선 – 마네 vs 드가

비교 항목  마네  드가 
도시 묘사 중심  외면, 표면의 인상  내면, 구조와 심리 
주요 소재  바, 카페, 거리, 상류층  무용수, 노동자, 음악가 
접근 방식  순간 포착, 인상주의적 감성  구도 중심, 해부학적 관찰 
도시의 의미  감각의 공간, 찰나의 아름다움  반복과 소외의 공간, 심리적 거리 
대표 작품  <폴리 베르제르의 바>  <다림질하는 여인들> 

 

 

 

5. 도시화의 시대, 예술의 새로운 언어

19세기 후반 파리는 도시계획(오스만화), 철도, 백화점, 전등 등으로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마네와 드가는 이러한 근대화의 흐름 속 인간의 위치를 탐구하며, 예술이 도시를 해석하는 방식에 큰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그들의 작업은 단순히 그림을 넘어서, 오늘날 우리가 사는 도시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틀을 제공합니다.


마네는 도시의 감각적 아름다움을,
드가는 도시인의 내면과 구조를,
그리고 둘 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도시라는 무대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미술로 풀어낸 셈입니다.

 

 


 

 

마네와 드가는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와 다르지 않은 공간에서,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예술로 격상시킨 화가들입니다.

그들의 시선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바쁜 출퇴근길, 고요한 새벽 카페, 공연장의 막이 오르기 전 순간…
이 모든 도시의 단면들은 예술이 될 수 있는 소재임을 그들은 이미 150여 년 전에 증명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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