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

한국에 동양화 채색화는 언제 유입되었을까?

메리지안 2025. 6. 25.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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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한국의 전통 그림은 수묵화, 즉 먹으로 그려진 그림입니다. 하지만 짙은 색감과 화려한 표현을 특징으로 하는 ‘채색화’도 오랜 역사와 깊은 예술성을 지닌 화풍입니다. 그렇다면 이 채색화는 언제부터 한국에 들어와 발전하게 되었을까요?

 

오늘은 동양 채색화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유입된 시기와 그 특징들을 시대 흐름에 따라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채색화의 유입 - 고려후기, 불화를 통해 시작되다


채색화(彩色畫)는 동양화에서 색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기법으로, 중국 송·원나라 회화에서 비롯되어 발전해 왔습니다.

 

 

한국 유입 시기: 고려 후기 (13세기 무렵)

 

  • 고려 시대는 불교가 국가의 중심 이념이었기 때문에 불화(佛畫)가 크게 발달했습니다.
  • 이 불화를 그릴 때, 비단 위에 진한 색을 써서 신성하고 웅장한 분위기를 표현했죠.
  • 이 과정에서 중국 송나라의 채색화 기법이 본격적으로 유입되었고, 이는 고려 불화의 핵심 미감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수월관음도>

 

 

고려시대는 불교문화가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 비단에 금니와 진한 색채를 사용한 불화들이 다수 제작되면서, 중국의 정교한 채색화 기법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유입되었습니다.

 

 

 

 

조선 전기 - 유교중심, 채색화는 왕실 중심으로 계승


조선이 건국되면서 불교 대신 유교가 국가 이념이 되며, 문인 중심의 수묵화가 전성기를 맞습니다.

하지만 채색화는 사라지지 않고 궁중과 의례 중심으로 유지됩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

 

채색화는 조선전기에는 왕의 초상화인 어진, 국왕 행차 그림인 의궤도, 공예도와 궁중 장식용 회화 등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채색화가 실용성과 의례 목적 중심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후기 - 채색화의 대중화, 진채화의 유입 기반마련


18세기 후반 이후, 조선 후기에는 실학사상과 민중문화가 부흥하면서 다양한 주제를 다룬 그림들이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 채색화는 궁중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널리 퍼지며 대중화되었고, 본격적인 진채화 유입의 기반을 마련하게 됩니다.

 

신윤복 <단오풍정>

 

이 시기엔 풍속화 (김홍도, 신윤복), 민화 (책거리, 호랑이도, 십장생도 등), 화조화, 어해도 등 자연 주제 채색화가 유행했으며,

이 무렵부터, 청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중국의 궁중 진채기법도 점차 조선 화가들에게 소개됩니다.

 

 

 

 

진채화(眞彩畵)의 본격유입 - 18세기 후반~19세기 초


진채화란?

채색화에는 맑게 채색하는 담채화와 진하게 채색하는 진채화가 있습니다.

그 중 진채화는 진한 색채를 사용해 극사실적으로 인물, 동물, 기물 등을 묘사하는 동양 채색화의 한 형태입니다. 단순한 장식이나 색의 보완을 넘어, 색 그 자체가 형태와 내용을 형성하는 화풍입니다.

 

 

한국에는 조선 후기, 18세기 후반~19세기 청나라 연행사(사신단)가 북경에서 보고 배운 그림 및 화보를 통해 유입되었으며, 특히 청 궁중화에서 사용하는 농담과 진채 기법이 한국 궁중화에 스며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유입 이후의 진채화는 왕의 초상화(조선후기 어진 제작), 기명절지도(기물과 꽃을 그린 정물화), 생생한 동물표현(맹호도, 화조도 등)에 사용되었습니다.

 

 

장승업 <기명절지도>

 

조선 말기 화가인 장승업(張承業)은 진채기법을 능숙하게 사용해 채색화를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하여 많은 작품을 그려냈습니다.

 

 


 

 

채색화는 단지 ‘색을 쓴 그림’이 아닙니다. 시대의 가치관, 미감, 그리고 기술의 정수를 담은 예술 표현이죠.

고려의 불화에서 시작해 조선의 궁중화, 민화, 그리고 현대 회화까지—채색화는 한국 미술사의 굵직한 한 흐름으로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이제 전시회나 박물관에서 ‘채색화’를 만나게 되면, 그 색의 무게와 흐름 속에서 시대를 함께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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