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

구륵법과 몰골법 - 선으로 그릴 것인가 색으로 말할 것인가

메리지안 2025. 7. 1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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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에는 수많은 표현 기법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회화의 근본을 이루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바로 구륵법(鉤勒法)몰골법(沒骨法)이다. 이 두 기법은 단순한 붓놀림의 차이를 넘어서, 그림에 담긴 철학과 세계관, 그리고 화가의 태도까지 반영한다. 이 글에서는 구륵법과 몰골법의 정의부터 역사, 표현 특징, 대표 작가, 현대 동양화에 미친 영향까지 깊이 있게 살펴본다.

 

 


 

1. 구륵법이란?


구륵법

 

● 정의

구륵법은 ‘선을 긋고 그 안을 채색하는 기법’이다. ‘구(鉤)’는 윤곽선을 긋는다는 뜻이고, ‘륵(勒)’은 그 선을 다듬어 형태를 명확히 한다는 의미다. 쉽게 말하면 밑그림을 그리고 그 안을 색으로 채우는 방식으로, 동양화 중에서도 특히 정밀화, 공필화에서 자주 사용된다.

 

● 특징
• 윤곽선이 뚜렷하게 살아 있어 형상이 명확하다.
• 세밀하고 정교한 묘사가 가능하다.
• 채색화나 불화(佛畫), 궁중화에서 많이 사용되며, 권위와 질서를 표현하는 데 유리하다.
• 선 중심의 사유방식이 반영되어 형(形)을 강조한다.

 

 

2. 몰골법이란?


몰골법

 

 

● 정의

몰골법은 ‘윤곽선을 생략하고 색과 먹으로 직접 형상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몰(沒)’은 없다는 뜻이고, ‘골(骨)’은 뼈, 즉 윤곽선(골격)을 뜻한다. 따라서 몰골법은 ‘선이 없는 그림’이 아니라, 선을 생략하고 형태를 먹과 색으로 직접 그려내는 방식이다.

 

● 특징
• 선이 없이 먹과 색의 번짐, 붓의 질감으로 형상을 표현한다.
• 감성적이고 즉흥적인 표현에 적합하다.
• 대상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본질을 포착하려는 시도이다.
• 형태보다는 기운, 생동감을 중시하며, ‘기운생동(氣韻生動)’의 표현에 어울린다.

 

 

 

3. 구륵법 vs 몰골법 – 무엇이 더 우월한가?


이 두 기법은 단순한 기법의 차이가 아니라 동양화의 철학과 세계관의 대립을 보여준다.

 

항목  구륵법  몰골법 
기본 방식  윤곽선을 먼저 그리고 채색  선 없이 색과 먹으로 바로 표현 
강조점  형(形)과 정밀함  기(氣)와 생동감 
사용 분야 채색화, 불화, 궁중화  문인화, 사군자, 자연 묘사 
표현 태도  계획적, 정돈된 화풍  즉흥적, 감성적인 화풍 
철학적 기반  형을 통해 정신을 표현  기운과 정서를 중시

 

 

어느 한쪽이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화가의 의도와 철학이다. 어떤 작가는 구륵법으로도 생동감을 표현하고, 또 다른 작가는 몰골법으로도 섬세한 감정을 그려낸다. 이 둘은 때로 혼합되기도 하며, 현대 동양화에서는 오히려 그 경계를 허물고 자유롭게 사용된다.

 

 


 

구륵법은 치밀함과 격식을, 몰골법은 자유와 감성을 대변한다. 마치 형과 기, 질서와 자유, 이성과 감성이라는 동양철학의 양면처럼, 두 기법은 조화를 이루며 동양화의 세계를 풍성하게 만든다.

동양화를 배운다면, 구륵법과 몰골법을 단순히 ‘그리는 방법’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이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가, 그 표현을 어떤 감정으로 전달하고 싶은가를 고민해보자. 결국 그림은 화가의 마음이 닿는 곳에서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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